노출도 있었고,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왜 AI는 우리를 참고하지 않을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Instagram에 8만 팔로워를 보유한 한 테크 기업이 있다. 매주 신제품 소식과 캠페인을 올리고, 게시물마다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는다. 그런데 ChatGPT에 “이 회사의 기술 철학”을 물으면 “충분한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에너지 기업은 매주 보도자료를 발행한다. ESG 활동, 신사업, 실적 발표까지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의 뉴스룸에서 “왜 이 기업은 에너지 전환을 이렇게 접근하는가”를 설명하는 글을 찾기는 어렵다. 보도자료는 많지만, 관점을 설명하는 콘텐츠는 없다.
작년 화제가 되었던 한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SNS에서 수십만 회 공유되었고,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캠페인이 “왜” 그렇게 기획되었는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를 설명하는 콘텐츠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이 세 기업 모두 “할 일은 다 하고 있다.” 보도자료 내고, 소셜미디어 운영하고, 캠페인 실행하고. 그런데 왜 AI는 이 기업들을 참고하지 않을까? 왜 검색 결과에는 늘 같은 기업들만 나올까?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 |
|---|---|---|---|
| 핵심 질문 | 얼마나 알려졌는가 | 관심을 얻었는가 | 참고할 만한가 |
| 측정 지표 | 보도 건수, 지면 크기 | 조회수, 좋아요, 공유 | AI 인용, 검색 유입 |
| 콘텐츠 수명 | 1일 (신문 지면) | 1주일 (타임라인) | 2-3년 (검색 아카이브) |
| 성공 기준 | “조선일보 1면 보도” | “인스타 10만 좋아요” | “ChatGPT가 우리 글 인용” |
| 주요 채널 | 보도자료, 언론 관계 | 소셜미디어, 블로그 | 뉴스룸, 지식 플랫폼 |
이 표를 보면 한 가지가 명확해진다. 질문이 바뀌었다.
그리고 질문이 바뀌면, 답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기업 커뮤니케이션 팀이 느끼는 혼란은 기술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다. 질문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예전 질문에 답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1. “얼마나 알려졌는가”를 묻던 시대
오랜 시간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질문은 단순했다. 얼마나 알려졌는가. 언론 보도량, 기사 수, 지면 크기, 노출 빈도는 커뮤니케이션 성과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었다.
이 질문은 당시 환경에서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정보의 유통 경로가 제한되어 있었고, 언론이 사실상 유일한 대중 접점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팀의 KPI는 명확했다. “경제면에 몇 건 보도되었는가”, “1면에 실렸는가”, “TV 뉴스에 나왔는가”.
이 시기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달의 문제였다. 메시지가 전달되었는지, 전달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곧 성과였다. 팀 회의에서는 보도자료 배포 건수와 언론사 컨택 현황이 보고되었다. 성과는 숫자로 명확했다.
2. “관심을 얻었는가”로 이동한 질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질문을 바꾸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반응이었다. 조회수, 클릭 수, 좋아요, 공유 수 같은 지표들이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했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질문은 “얼마나 알려졌는가”에서 “얼마나 관심을 끌었는가”로 이동했다.
이 변화 역시 자연스러웠다.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기업 커뮤니케이션은 확산과 반응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얼마나 빠르게 퍼졌는지, 얼마나 많은 반응을 얻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 되었다.
팀 회의 보고서는 달라졌다. “Instagram 도달률 150% 증가”, “Facebook 참여율 3.2%”, “유튜브 조회수 50만 돌파”. 이 숫자들은 경영진에게 보고하기 좋았다.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며, 비교 가능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백이 있었다. 관심은 측정할 수 있었지만, 이해는 측정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많이 말했고, 반응도 얻었지만, 과연 제대로 이해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3. 그리고 누군가는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2023년, 한 투자사 애널리스트가 에너지 기업 IR 미팅에서 물었다.
“귀사의 탄소중립 로드맵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의 배경이 된 산업 관점을 어디서 더 읽어볼 수 있나요? 귀사가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IR 담당자는 당황했다. 보도자료는 수십 건 있었다. SNS 게시물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곳은… 없었다.
비슷한 일은 채용 시장에서도 일어났다. 한 구직자가 기업 뉴스룸을 방문했다가 실망하고 돌아갔다. “이 회사가 정말 AI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보도자료만 있고 생각을 설명한 글은 없더라고요.”
이 질문들은 조회수로 측정되지 않는다. 좋아요로 확인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 분야를 정말 이해하고 있나요?”라는 더 근본적인 의심이 생긴다.
이 시점부터 기업 커뮤니케이션에는 설명되지 않은 질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을 반복해서 말해왔는가.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이 산업을 바라보고 있는가. 시간이 지나도 참고할 수 있는 설명을 남겨왔는가.
4. AI 시대의 질문: “참고할 수 있는가”
AI의 등장은 이 숨겨져 있던 질문을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AI는 노출을 보지 않는다. 좋아요나 조회수에도 관심이 없다. AI가 기업을 이해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AI는 기업을 하나의 메시지 발신자가 아니라, 하나의 지식 출처로 바라본다. 사용자가 “탄소중립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AI는 이렇게 판단한다.
- 이 기업은 탄소중립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 그 설명은 정의에서 시작해 해설과 사례로 이어지는가
- 2년 전의 설명과 지금의 설명이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는가
Instagram 팔로워가 8만 명이든 80만 명이든, AI에게는 의미가 없다. 대신 AI는 이 기업이 “같은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해왔는가”를 본다.
실제로 ChatGPT에 “기업의 ESG 전략 수립 과정”을 물으면, 팔로워가 많은 기업이 아니라 ESG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쌓아온 기업의 뉴스룸이 인용된다. Perplexity에서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검색하면, 보도자료가 많은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지속적으로 해석해온 기업이 출처로 제시된다.
AI 시대의 질문은 “참고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는 일회성 캠페인이나 단발성 메시지로는 답할 수 없다.
질문이 바뀌면,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도 바뀐다
질문이 달라지면 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노출을 묻는 질문에는 배포 구조가 필요했다. 얼마나 많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냈는지, 어떤 기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확산 구조가 필요했다. 얼마나 빠르게 퍼지는지, 어떤 해시태그가 먹히는지, 어느 시간대에 게시해야 도달률이 높은지가 중요했다.
참고를 묻는 질문에는 전혀 다른 구조가 요구된다. 사고가 축적되고, 설명이 이어지며, 시간이 쌓이는 구조다.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다루고, 과거의 글이 현재의 글을 뒷받침하며, 정의-해설-확장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
그래서 뉴스룸이 다시 주목받고, 사고 리더십이 ‘발언’이 아니라 ‘누적’의 문제로 재정의되며, AEO(Answer Engine Optim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것은 새로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 변화의 결과다.
우리 팀은 지금, 어떤 질문에 답하고 있는가
이 글을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점검은 이것이다.
지난 3개월간 우리가 발행한 콘텐츠를 꺼내놓고 물어보라.
- 이 콘텐츠는 “노출”을 목표로 만들어졌는가?
(보도자료, 배포용 자료, 언론 대응 자료) - 이 콘텐츠는 “반응”을 목표로 만들어졌는가?
(SNS 캠페인, 이벤트 게시물, 바이럴 콘텐츠) - 이 콘텐츠는 “참고”를 목표로 만들어졌는가?
(개념 정의, 산업 해설, 전략 배경 설명, 관점 제시)
대부분의 기업이 1번과 2번에 90% 이상을 쓰고 있다. 3번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리소스 있으면”으로 미뤄진다. 이해할 만하다. 1번과 2번은 즉각적인 성과로 보고할 수 있지만, 3번은 6개월, 1년 뒤에야 효과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3번만 읽는다.
노출 중심 콘텐츠는 AI에게 “발표문”으로 보인다. 반응 중심 콘텐츠는 AI에게 “순간 정보”로 보인다. 참고 중심 콘텐츠만이 AI에게 “지식 출처”로 인식된다.
질문이 바뀌면, 우선순위도 바뀐다
만약 여전히 “보도자료 몇 건 배포”, “SNS 도달률 몇 %”만 보고하고 있다면, 지금이 질문을 바꿀 적기다.
다음 회의에서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 “우리는 어떤 주제에 대해 가장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나요?”
- “ChatGPT에 우리 기업을 물으면 어떤 답이 나오나요?”
- “2년 전 우리가 쓴 글을 지금도 누군가 참고할 수 있나요?”
이 질문들은 당장 다음 주 KPI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리소스 배분도, 콘텐츠 구조도, 뉴스룸의 역할도 함께 바뀌기 시작한다.
AI 시대의 기업 커뮤니케이션은 더 많은 메시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어떤 질문에 답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각이 시작되면, 오래 참고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