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ier의 관점에서, Presentation에 머물러 있는 기업 웹사이트 프로젝트를 진단한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의 고전적 패턴인 3-Tier Architecture는 시스템을 세 계층으로 분리한다. Presentation(표현), Logic(로직), Data(데이터). 각 계층은 독립적으로 설계되고,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며, 계층 간의 결합도를 최소화한다. 이 분리가 보장되면, 한 계층을 교체해도 나머지가 영향받지 않는다.
기업 웹사이트에 이 프레임을 적용하면, 불편한 사실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Presentation Tier에 머물러 있다. Logic Tier는 빈약하고, Data Tier는 데이터베이스 안에 숨겨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3-Tier 중 하나만 설계하고, 나머지 두 개는 건너뛴 셈이다. 이 글에서 그 빈 두 칸을 채워본다.
Presentation Tier — 프론트엔드에 갇힌 프로젝트
기업 웹사이트 프로젝트의 전형적인 프로세스가 있다. 디자인이 먼저 시작되고, 퍼블리싱이 뒤따르고, 콘텐츠는 마지막에 채워진다. 디자인 시안이 확정된 후에 “여기에 들어갈 내용을 주세요”가 된다. 콘텐츠가 디자인에 종속되는 구조다.
이 순서의 결과는 구체적이다.
핵심 데이터가 인포그래픽 이미지 안에 갇힌다. 매출 추이, 사업 구조, 기술 스펙 같은 정보가 디자인된 이미지로만 존재하고, 텍스트로 제공되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는 아름답지만, 기계는 이 정보를 읽을 수 없다. 검색 엔진도, AI도 이미지 안의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한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렌더링된다. 핵심 메시지가 SVG나 PNG 안에 들어가 있다. 디자인 시안의 폰트와 레이아웃을 픽셀 단위로 재현하기 위해서다. 접근성, 검색 가능성, 기계 가독성이 모두 희생된다.
레이아웃이 바뀌면 콘텐츠도 함께 무너진다. 구조와 표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바일 대응을 위해 레이아웃을 조정하면 콘텐츠의 위계까지 흔들린다. 리뉴얼 때마다 콘텐츠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젤드만(Jeffrey Zeldman)이 2003년에 구조(HTML)와 표현(CSS)과 행위(JavaScript)를 분리할 것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기업 웹사이트 프로젝트에서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개발자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젝트 프로세스의 문제다. 디자인이 먼저 결정되는 구조에서, 개발팀은 “시안대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요구를 받는다. 시안에 구조적 설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개발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Logic Tier — 데이터 모델링이라는 빠진 단계
3-Tier의 중간 계층인 Logic Tier는 비즈니스 로직이 작동하는 곳이다. 기업 웹사이트에서 이 계층은 CMS의 데이터 모델링에 해당한다.
데이터 모델링이란 콘텐츠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어떤 콘텐츠 유형이 존재하는가. 각 유형에 어떤 필드가 있는가. 유형 간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데이터 모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Custom Post Type(CPT)으로 콘텐츠 유형을 정의한다. “제품”, “사례 연구”, “보도자료”, “기술 문서”가 각각 독립된 콘텐츠 유형이 된다. 일반 “게시물”과 구분된다.
Advanced Custom Fields(ACF)로 각 유형의 필드를 설계한다. “제품”에는 모델명, 카테고리, 스펙, 적용 산업, 관련 사례 같은 필드가 붙는다. “보도자료”에는 발행일, 콘텐츠 유형, 관련 사업 분야, 첨부 파일 같은 필드가 붙는다. 같은 “콘텐츠”이지만 내부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Taxonomy로 분류 체계를 만든다. 산업별, 솔루션별, 주제별 분류가 콘텐츠를 가로지르며 연결한다. 하나의 사례 연구가 “에너지” 산업에 속하면서 동시에 “뉴스룸” 솔루션에 연결되고, “ESG” 주제 태그를 가질 수 있다.
모든 콘텐츠 단위가 고유하게 식별 가능해야 한다. 각각의 제품, 각각의 사례, 각각의 보도자료가 고유한 URI(주소)를 갖고, 그 주소가 구조적으로 예측 가능해야 한다. /products/model-a/, /case-studies/company-x/, /newsroom/press-release-2025-01/ — 주소 자체가 콘텐츠의 위계와 유형을 반영한다.
이것은 코딩이 아니다. 아키텍처 설계다.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보를 어떤 구조로 모델링하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이 단계가 대부분의 기업 웹사이트 프로젝트에서 빠져 있다. 디자인 다음에 곧바로 개발로 넘어간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데이터 모델링이 없다.
Data Tier의 역전
전통적 3-Tier에서 Data Tier는 가장 안쪽에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Application Tier 뒤에 숨어서, 외부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Presentation을 통해 Application과 상호작용하고, Application이 Data에 접근하여 결과를 돌려준다. 데이터는 안에 있다.
AI 시대에, 이 계층이 밖으로 나온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2001년에 시맨틱 웹 비전을 발표했다. 웹이 “문서의 웹”에서 “데이터의 웹”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RDF, OWL, SPARQL — 기계가 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술 스택이었다. 25년간, 이 비전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너무 복잡하고, 너무 학술적이고, 현장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런데 버너스리의 비전이 전혀 다른 경로로 실현되고 있다.
RDF 대신 Schema.org가 왔다. JSON-LD라는 간결한 형식으로, 웹페이지의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기계에게 알려준다. “이 페이지는 Organization에 대한 것이고, 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 산업에 속한다”는 정보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한다.
SPARQL 대신 ChatGPT가 왔다. 형식 논리 쿼리 대신 자연어로 질문하면, AI가 웹의 구조화된 데이터를 참조하여 답변을 생성한다.
형식 논리(Formal Logic) 대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왔다. 기계가 웹을 “이해”하는 방식이 논리적 추론에서 통계적 패턴 인식으로 바뀌었을 뿐, 목표는 동일하다 — 기계가 웹의 의미를 읽는 것.
Data Tier가 역전된 것이다. 기업 웹사이트의 데이터는 더 이상 데이터베이스 안에 숨어 있을 수 없다. 밖으로 나와서, AI에게 직접 읽혀야 한다. Schema.org 마크업, 시맨틱 HTML, JSON-LD — 이것이 역전된 Data Tier의 구현이다.
“콘텐츠가 먼저” — 25년 전 원칙의 재유효
Data Tier가 밖으로 나왔다면, 설계의 우선순위도 바뀌어야 한다. 젤드만이 주장한 또 하나의 핵심 원칙이 있다. Progressive Enhancement — 콘텐츠가 먼저, 스타일은 그 다음, 인터랙션은 마지막이라는 설계 원칙이다. CSS가 없어도 콘텐츠는 읽혀야 하고, JavaScript가 없어도 기본 기능은 작동해야 한다.
2003년에 이 원칙이 필요했던 이유는 스타일시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가 있었기 때문이다. IE 6과 Netscape 4가 공존하던 시절, 모든 브라우저에서 콘텐츠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2026년에 이 원칙이 다시 필요한 이유는 다르다. 눈이 없는 독자를 위해서다.
AI 엔진은 CSS를 렌더링하지 않는다. JavaScript를 실행하지 않는다. GSAP 애니메이션을 감상하지 않는다. HTML의 시맨틱 구조와 Schema.org의 메타데이터만 읽는다. AI에게 기업 웹사이트는 — 아무리 시각적으로 화려해도 — 텍스트와 구조의 합이다.
“콘텐츠가 먼저”라는 25년 전의 원칙이, AI 시대에 가장 실용적인 설계 원칙이 되었다. 단, 그 이유가 달라졌을 뿐이다. 스타일시트 없는 브라우저가 아니라, 눈이 없는 독자를 위해서다.
마무리
기업 웹사이트 프로젝트는 프론트엔드 프로젝트가 아니다. 아키텍처 프로젝트다.
Presentation Tier만 설계하면 시스템의 3분의 1만 만든 것이다. Logic Tier에서 데이터를 모델링해야 콘텐츠가 구조를 갖는다. Data Tier를 역전시켜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외부에 노출해야, AI 시대의 기업 웹사이트가 완성된다. 3-Tier 모두를 설계해야 한다.
버너스리가 25년 전에 그린 시맨틱 웹은, 그가 상상한 기술 스택과는 다른 도구로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비전은 정확했다. 기계가 웹의 의미를 읽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그 시대에, 기업 웹사이트의 설계 범위는 한 겹 더 넓어져야 한다.
박용덕 — 스튜디오파티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