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웹사이트의 세 겹: 보는 것, 머무는 것, 발견되는 것

Insights · 2026.02.25

AI 시대, 기업 홈페이지를 정보 설계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2004년 도널드 노먼은 Emotional Design에서 인간이 사물을 경험하는 방식을 세 가지 처리 층위로 설명했다. 본능적 반응(Visceral), 행동적 경험(Behavioral), 반영적 해석(Reflective). 아름다운 물건을 보는 순간 드는 감탄은 Visceral이고, 그것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자연스러움은 Behavioral이며, 사용 이후 “이건 나를 표현하는 물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Reflective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모델에 한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인간의 Reflective가 확장되고 있다. 기계의 해석 층위가 생긴 것이다. ChatGPT가 어떤 기업의 웹사이트 콘텐츠를 읽고, “이 기업에 따르면…”이라고 인용하는 순간 — 그것은 인간의 반영적 판단이 아니라 기계의 구조적 판독이다. 그리고 이 판독의 결과가 다시 수백만 명의 인간에게 전달된다.

기업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Visceral: 감각의 레이어

노먼이 말한 Visceral 처리는 의식적 사고 이전에 작동한다. 색감, 형태, 비율 — 눈이 먼저 판단한다. 기업 웹사이트에서 이 레이어는 브랜드의 시각적 첫인상이다. 타이포그래피, 컬러 시스템, 레이아웃의 리듬, 여백의 밀도. 방문자가 사이트에 도착한 뒤 0.05초 안에 형성되는, 이 기업이 어떤 격의 조직인가에 대한 직관적 판단.

이 레이어는 디자인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이며, 여전히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시각적 완성도가 낮은 기업 웹사이트는 그 기업의 전문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것은 감각의 문제이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노먼의 표현을 빌리면, Visceral은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뇌가 의식보다 먼저 결정하는” 층위다.

한국의 웹 에이전시 시장은 지난 10년간 이 레이어에 집중해왔다. GSAP과 Three.js를 활용한 스크롤 애니메이션, 풀스크린 비디오 배경, 시차 효과(Parallax) — 기술적으로 정교한 시각 경험을 만드는 데 상당한 역량이 축적되었다. 결과물의 감각적 수준은 높다.

문제는, 많은 프로젝트가 이 레이어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표면 아래에 콘텐츠의 구조가 없다. 제품 정보는 PDF를 이미지로 변환한 수준이고, 뉴스는 날짜순으로 쌓여 있을 뿐이며, 검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시 제임스 가렛(Jesse James Garrett)이 The Elements of User Experience에서 제시한 다섯 개의 평면(Surface, Skeleton, Structure, Scope, Strategy) 중에서, Surface만 설계하고 나머지 네 개를 건너뛴 셈이다.

이것은 비주얼 디자이너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젝트 구조의 문제다. 기업 홈페이지 프로젝트에서 정보 아키텍처(IA) 설계에 할당되는 시간과 예산이 비주얼 디자인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적다. 결과적으로, 감각적으로 뛰어나지만 구조적으로 비어 있는 사이트가 만들어진다. 방문자는 한 번 감탄하고 떠난다. 돌아올 이유가 없다.


Behavioral: 경험의 레이어

노먼의 두 번째 층위인 Behavioral은 사용의 질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쓰는가”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험. 기대한 곳에 기대한 것이 있고, 행동의 결과가 예측 가능하며,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없는 상태.

기업 웹사이트에서 이 레이어는 콘텐츠를 탐색하고, 비교하고, 원하는 정보에 도달하는 구조화된 경험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부분의 기업 웹사이트에서 설계되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기업이 보유한 콘텐츠는 종류가 다양하다. 보도자료, 제품 스펙, 기술 문서, 브랜드 스토리, 고객 사례, ESG 보고. 이 콘텐츠들은 각각 다른 데이터 구조와 탐색 패턴을 필요로 한다. 제품 카탈로그는 카테고리 필터와 스펙 비교 기능이 있어야 한다. 뉴스룸은 시간순 아카이브와 주제별 분류를 동시에 지원해야 한다. B2B 화학소재 기업의 카탈로그가 요구하는 필드 구조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온라인 쇼룸이 요구하는 필드 구조는 같은 “제품 소개”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이 설계를 실현하는 기술적 수단이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의 구조화 기능이다. 워드프레스를 예로 들면, Custom Post Type(CPT)으로 콘텐츠의 유형을 정의하고, Advanced Custom Fields(ACF)로 각 유형에 맞는 데이터 필드를 설계하며, Taxonomy로 분류 체계를 만든다. 이것은 코딩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아키텍처 설계의 문제다. 어떤 콘텐츠를 어떤 단위로 나누고, 각 단위에 어떤 속성을 부여하며, 그 속성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

가렛의 5평면 모델에서 이것은 Structure 레이어에 해당한다. 정보가 어떻게 조직되고, 사용자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며, 각 지점에서 어떤 선택지가 주어지는가. 재러드 스풀(Jared Spool)이 정보 냄새(Information Scent)라고 부른 개념 — 사용자가 “이 링크를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는 단서의 강도 — 은 이 Structure 레이어의 설계 품질에 직접 의존한다.

잘 설계된 구조는 행동을 바꾼다. 방문자가 한 페이지를 보고 이탈하는 대신, 관련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탐색한다. 제품 카탈로그에서 필터를 조작하고, 유사 제품을 비교하고, 해당 제품의 기술 문서로 이동하고, 적용 사례를 확인한다. 체류 시간이 늘고, 탐색 깊이가 깊어지며, 최종적으로 문의나 전환으로 이어진다. 피터 모빌(Peter Morville)이 UX의 일곱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꼽은 Findable — “찾을 수 있는가” — 이 이 레이어에서 실현된다.

이 경험의 총체가 단순한 “홈페이지”와 콘텐츠 허브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콘텐츠 허브란 결국,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가 구조화된 관계 속에서 탐색 가능한 상태로 축적되는 플랫폼이다. 기술적으로는 CMS 설계의 문제이고, 경험적으로는 정보 아키텍처의 문제이며, 비즈니스적으로는 방문자의 체류와 전환의 문제다.


세 번째 겹: 기계가 읽는 레이어

노먼의 모델에는 없었던 층위가 여기서 시작된다.

2024년 이후, 기업 정보를 찾는 경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잠재 고객이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검색 엔진에 쿼리를 입력하는 대신 AI 엔진에게 질문한다. ChatGPT, Perplexity, Google AI Overview가 답변을 생성하고, 그 답변의 근거로 특정 웹사이트의 콘텐츠를 인용한다. 이 인용은 선별적이다. AI 엔진은 모든 웹사이트를 동등하게 참조하지 않는다. 구조화된 데이터가 있고, 콘텐츠의 유형과 맥락이 명확하며, 시의성이 증명된 사이트를 우선적으로 신뢰한다.

이것은 피터 모빌이 말한 Findable의 확장이다. 모빌이 2005년에 정의한 Findable은 “사이트 내에서 사용자가 정보를 찾을 수 있는가”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Findable은 두 겹으로 나뉜다. 사이트 안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가(Human Findability)와, 사이트 밖에서 기계가 찾을 수 있는가(Machine Findability).

두 번째 Findable을 실현하는 수단이 구조화 데이터(Schema.org 마크업), 시맨틱 HTML, 역피라미드 구조의 콘텐츠 작성, 그리고 발행 이력의 명시적 표기다. 이 요소들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방문자가 사이트를 탐색할 때 체감하는 것은 Behavioral 레이어의 경험이지, Schema 마크업의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AI 엔진은 이 보이지 않는 레이어를 통해 콘텐츠를 판독하고, 신뢰하고, 인용한다.

이 영역을 SEO 업계에서는 AEO(Answer Engine Optimization)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존 SEO가 “검색 결과 목록에서 상위에 노출되는 것”이었다면, AEO는 “AI 엔진의 답변에 출처로 인용되는 것”이다. 목표가 다르면 설계가 달라진다. SEO는 키워드 밀도와 백링크에 집중했지만, AEO는 콘텐츠의 구조적 명확성과 인용 가능성(Citability)에 집중한다.

다행히 이 두 겹은 대립하지 않는다. Behavioral 레이어에서 콘텐츠를 잘 구조화하면, 그 구조가 Machine Findability의 기반이 된다. 인간을 위한 좋은 정보 설계가 기계를 위한 좋은 정보 설계이기도 하다.


관점을 뒤집으면

여기까지가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다. Visceral 위에 Behavioral을, Behavioral 위에 Machine Readable을 쌓아올리는 설계의 관점.

그런데 이 세 겹을 고객 — 즉 기업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 — 의 시선으로 뒤집으면 순서가 역전된다.

고객의 여정은 점점 더 AI 엔진에서 시작된다. “이 분야에서 괜찮은 회사가 어디야?”라는 질문을 ChatGPT에 던지고, AI가 인용한 출처 링크를 클릭하여 기업 웹사이트에 도달한다. 이것이 유입점(Entry Point)이다. 세 번째 겹, Machine Readable 레이어가 실은 고객 경험의 첫 번째 접점이 되는 것이다.

도착한 고객은 콘텐츠 허브를 탐색한다. AI가 인용한 기사에서 관련 제품 카탈로그로 이동하고, 카탈로그에서 적용 사례로, 사례에서 기술 문서로 — Behavioral 레이어의 구조를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체류(Flow)다. 정보 냄새가 충분히 강하면 탐색은 계속되고, 약하면 이탈한다.

충분히 탐색한 고객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다.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브랜드의 격, 한 문장으로 응축된 가치 제안, 행동을 유도하는 CTA. Visceral 레이어의 감각적 힘이 전환의 마지막 일격을 담당한다.

가렛의 모델이 “아래에서 위로 쌓는다(Strategy → Surface)”였다면, 고객의 경험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 AI가 보내준 링크에서 시작해, 콘텐츠 구조를 따라 탐색하고, 브랜드의 시각적 힘 앞에서 결정을 내린다.

이 두 방향을 동시에 설계하는 것이 AI 시대 기업 웹사이트의 과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가렛은 사용자 경험 설계에서 가장 흔한 실수를 이렇게 짚었다. 한 레이어의 문제를 다른 레이어에서 해결하려는 것. Surface의 아름다움으로 Structure의 부재를 가릴 수 없고, Structure의 정교함으로 Strategy의 부재를 보완할 수 없다.

같은 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모션 그래픽의 화려함으로 콘텐츠 구조의 부재를 가릴 수 없고, 콘텐츠 구조의 정교함으로 기계 가독성의 부재를 보완할 수 없다. 세 겹 모두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의 여정에서 세 겹의 순서가 역전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가장 안 보이는 레이어가 가장 먼저 작동한다.


박용덕 — 스튜디오파티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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