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세는 것과,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같은 단어, 다른 이해
두 기업이 있다. 둘 다 지난 1년간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50회 사용했다.
A사는 50개의 보도자료에 걸쳐 ‘탄소중립 추진’, ‘탄소중립 달성’, ‘탄소중립 목표’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각 보도자료는 실적 발표나 행사 소식에 탄소중립이 언급되는 형태였고, 개별 글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B사는 5개의 심층 글에서 탄소중립을 다뤘다. 첫 번째 글에서 ‘탄소중립이란 우리 산업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의했고, 두 번째 글에서 ‘왜 지금 탄소중립인가’를 해석했으며, 이후 글에서는 실행 방식, 과정에서 마주한 제약, 다음 단계를 차례로 설명했다. 각 글은 독립적으로 읽히지만, 함께 읽으면 하나의 사고 흐름을 이룬다.
ChatGPT에 “이 기업의 탄소중립 전략을 설명해줘”라고 물으면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 A사: “탄소중립 관련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 B사: “이 기업은 탄소중립을 단순한 배출 감축이 아니라 [구체적 정의]로 이해하고 있으며, [접근 방식]을 통해 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관련 설명은 [뉴스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같은 횟수, 같은 키워드. 그런데 AI의 이해는 왜 이렇게 다를까.
AI는 단어를 세지 않는다.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읽는다.
AI는 단어를 세지 않는다
검색 엔진 최적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에는 비교적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특정 키워드로 노출되기 위해서는 그 단어를 본문에 얼마나,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했다. 제목, 첫 문단, 본문 밀도는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방식은 검색 엔진이 텍스트를 ‘매칭’ 중심으로 이해하던 시절에는 유효했다. 검색어와 페이지 간의 유사성을 단어 수준에서 계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다르게 작동한다. AI는 특정 단어가 몇 번 등장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의미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를 본다.
같은 ‘AI’라는 단어라도, 단순히 나열되는 경우와 개념으로 설명되는 경우는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전자는 언급에 가깝고, 후자는 이해의 대상이 된다. AI가 참고하는 것은 후자다.
AI에게 중요한 것은 단어의 존재가 아니라, 그 단어가 어떤 사고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는가다.
AI가 읽는 것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AI가 읽는 ‘맥락’이란 무엇일까. 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비교적 명확한 구조를 가진다. 맥락은 대체로 세 가지 층위에서 형성된다.
문장 사이의 맥락
하나의 글 안에서 문장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첫 번째 층위다. 선언만 나열된 문장은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이해를 만들지는 못한다. 정의가 제시되고, 그 정의가 왜 필요한지 설명되며, 선택과 결과가 이어질 때 문장은 사고의 흐름을 갖게 된다.
AI는 이 흐름을 ‘설명’으로 인식한다. 문장 하나하나는 중요하지 않다.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중요하다.
글 사이의 맥락
두 번째 층위는 글과 글 사이의 연결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글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에 제시된 정의가 이후 글에서 다시 호출되고, 이전의 선택이 다음 글에서 해석될 때, AI는 이를 일관된 사고의 축적으로 인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글의 수가 아니라, 이전 설명이 현재 설명의 기반이 되고 있는가다. 서로 단절된 50개의 글보다, 연결된 10개의 글이 더 강한 맥락을 만든다.
주제 사이의 맥락
세 번째 층위는 주제 간의 관계다. 기술, 전략, 조직, 투자 같은 주제가 각각 분리되어 다뤄질 수도 있지만, 그 관계가 설명될 때 하나의 사고 체계로 묶인다.
AI는 개별 카테고리를 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주제가 어떤 관점 아래에서 연결되는지를 본다. 이 연결이 명확할수록, 기업의 사고는 더 입체적으로 인식된다.
맥락은 언제 생기는가
맥락은 특별한 기술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어떤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 그 의미가 분명히 제시되는 순간, 이전에 다뤘던 설명이 다시 호출되는 순간, 같은 개념이 일관된 언어로 반복되는 순간, 서로 다른 주제가 하나의 관점 아래 연결되는 순간. 이런 지점들이 쌓이면서 맥락은 만들어진다.
반대로, 매번 새로운 글이 이전 설명과 무관하게 시작된다면 맥락은 축적되지 않는다. 그 결과 콘텐츠는 많아지지만, 사고는 남지 않는다.
이 구조는 특정 산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에너지, 제조, 기술, 금융, 플랫폼 등 산업이 다르더라도 AI가 맥락을 이해하는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반복되는 정의, 연결된 설명, 시간에 걸친 축적이 있을 때만 AI는 그 기업을 하나의 관점으로 인식한다.
맥락이 곧 이해다
많은 기업이 AI 시대의 최적화를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메타 태그, 구조화 데이터, 자동화 도구 같은 요소들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기업을 신뢰하는 근거는 기술이 아니라 맥락이다. 어떤 용어를 어떻게 정의해왔는지, 그 정의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그 설명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 구조가 갖춰져 있을 때 AI는 해당 콘텐츠를 ‘참고할 만한 지식’으로 저장한다.
맥락 없는 콘텐츠는 AI에게 사건에 가깝다. 반면 맥락 있는 콘텐츠는 사고의 기록이 된다. AI는 전자를 지나치고, 후자를 기억한다.
AI는 콘텐츠를 읽지 않는다. 기업이 남긴 사고의 맥락을 읽는다. 그리고 그 맥락이 명확할수록, AI는 우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