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캠페인을 저장하지 않는다, 설명을 저장한다
봤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 SNS 타임라인을 가득 채웠던 기업 캠페인이 있었다. 당시엔 분명 여러 번 봤다. 어떤 해시태그였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 “그 캠페인이 무엇에 관한 거였지?”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그 기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집행한 캠페인 10개, 발행한 보도자료 50개, 올린 SNS 게시물 200개 중에서 지금도 “이게 우리의 관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몇 개나 될까. 당시엔 분명 조회수도 있었고, 반응도 있었고, 보고서에도 숫자가 남았다. 그런데 그 콘텐츠들이 지금도 누군가에게 참고되고 있을까.
우리는 수많은 기업 메시지를 ‘봤지만’,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AI도 비슷하다. 단, 기억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1. 노출의 시대: “봤는가”가 전부였던 시절
노출은 ‘존재 증명’이었다
오랜 시간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는 명확했다. 보이는 것. 언론에 보도되는 것, 지면에 오르는 것, 뉴스에 언급되는 것. 노출은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경제면 3단”, “저녁 뉴스 보도” 같은 기록이 성과였다.
이 방식은 당시 환경에서 매우 합리적이었다. 정보의 유통 경로가 제한되어 있었고, 대중이 기업을 인식하는 창구도 한정되어 있었다.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기업은 보도자료를 쓰고, 기자를 만나고, 지면을 확보하는 일에 집중했다.
노출은 기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보이기만 하면, 일단 존재는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2. 반응의 시대: “기억될 것처럼 보였던 착시”
반응은 ‘기억의 증거’처럼 보였다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새로운 지표가 등장했다. 조회수, 좋아요, 공유, 댓글. 이 숫자들은 단순히 ‘봤다’는 증거를 넘어, ‘관심을 가졌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팀은 이 신호를 기억의 증거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실제 보고서는 이렇게 작성되곤 했다.
분기 소셜미디어 성과 요약
- 게시물 24건
- 총 도달 수 52만
- 평균 참여율 3.8%
- 좋아요 12,400개
이 숫자들은 명확했고, 비교 가능했으며, 보고하기에 적합했다. 당시 기준에서는 성공이었다. 많은 사람이 봤고, 반응했고, 공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이 콘텐츠들은 다시 불리지 않았다. 검색 결과에서도, AI의 답변에서도, 이 캠페인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반응은 ‘기억의 신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순간적 주목에 더 가까웠다.
3. 그런데 AI는 ‘기억’의 기준이 다르다
AI에게 기억이란, 다시 불러올 수 있는가다
인간의 기억은 인상과 감정에 크게 의존한다. 강렬했던 경험, 반복 노출, 감정적 반응은 기억을 만든다. 그래서 노출이 많고 반응이 컸던 콘텐츠가 기억될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AI의 기억은 구조와 설명에 기반한다. AI는 콘텐츠를 ‘봤는지’보다, ‘다시 참고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조회수나 좋아요 수치는 판단 기준이 아니다. 대신 AI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 이 개념은 정의되어 있는가
- 맥락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가
-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가
- 이전 정보와 연결될 수 있는가
AI에게 기억이란 ‘노출’이 아니라 ‘참고 가능성’에 가깝다.
그래서 노출과 반응이 많았던 콘텐츠가 AI에게는 거의 남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4. AI는 무엇을 기억하지 않는가
AI가 기억하지 않는 것들
AI가 기업 콘텐츠를 판단할 때 자주 마주치는 유형들이 있다.
일회성 캠페인
“○○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 무엇이 성공이었는지, 왜 시작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맥락 없는 보도자료
“신기술 △△를 도입했습니다.”
→ △△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는 빠져 있다.
결과만 남은 성과 보고
“ESG 평가 A등급 획득.”
→ 이 등급이 어떤 전략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설명 없는 선언
“고객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습니다.”
→ 고객 중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의되지 않는다.
AI는 이런 콘텐츠를 ‘사건’으로는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으로는 거의 저장하지 않는다. 설명이 없고, 정의가 없으며, 관점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5. AI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AI가 기억하는 것은 ‘설명 구조’다
그렇다면 AI는 어떤 기업을 반복해서 참고할까. 답은 명확하다. 설명이 축적된 기업이다.
실제로 여러 산업에서 관찰되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한 기업의 뉴스룸은 특정 핵심 개념을 다룰 때, 항상 동일한 정의에서 출발한다. 이 정의는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 해당 기업이 그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기준 문장이다.
이후 수년에 걸쳐 발행된 콘텐츠들은 모두 이 정의를 공유하면서, 각기 다른 사업·기술·정책 맥락에서 의미를 확장한다. 결과적으로 이 뉴스룸에는 하나의 글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축적된 설명 체계가 형성된다.
AI가 특정 기업을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이유는 메시지가 강해서가 아니다. 이처럼 일관된 설명 구조가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AI는 기업의 메시지를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이 남긴 설명 방식과 그 축적을 우선적으로 참고한다.
6. 그래서 ‘참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기억되는 기업과, 스쳐 지나가는 기업의 차이
이제 왜 같은 질문에 늘 비슷한 기업이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팔로워 수가 많아서도, 보도자료가 많아서도 아니다. 차이는 설명의 밀도와 축적이다.
많이 말한 기업이 아니라, 같은 질문을 오래 설명해온 기업이 기억된다. 최신 글 하나가 아니라, 2~3년에 걸쳐 쌓인 관점이 신뢰된다. 이것이 노출의 시대에서 참고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변화는 특정 도구나 기술 때문이 아니다. 기억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7. 우리는 노출을 만들고 있는가, 기억을 남기고 있는가
지금 만드는 콘텐츠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글은 어떤 전략을 권하기보다, 질문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간단한 점검만 제안한다.
지난 3개월간 만든 콘텐츠를 꺼내놓고 물어보자.
- 이 콘텐츠는 용어를 정의하고 있는가
- 이 콘텐츠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가
- 이 콘텐츠는 1년 뒤에도 다시 불릴 수 있는가
대부분의 기업은 노출과 반응 중심 콘텐츠에 대부분의 리소스를 쓴다. 이해할 만하다. 즉각적인 보고가 가능하고, 성과가 빠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설명 중심 콘텐츠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AI는 그 소수의 설명 콘텐츠만을 참고한다.
노출은 많았다.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남지 않았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이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가”로.
AI 시대의 기업 커뮤니케이션은 더 크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다시 불릴 수 있는 설명을 남기는 일이다.
노출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참고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